老  妄

웅암 이 진 원     

  망령이란 누구에게나 있는 의지와 행실의 편차를 형상화한 것일뿐, 꼭 노인 만 가지는 불가피한 병으로 아는 것은 잘못이다. 젊고 건강하며, 고도의 학식이나 인격도야가 깊은 자들의 망령은 그 학식과 인격에 비례한다. 다만 그들도 그 망령의 의미가 폐부에 와 닿을 때가 아니면 깨닫지 못하는 것 또한 신의 의지다. 부모님 살아 계실제, <老妄>의 의미를 깨달았더라면, 아침저녁 부모님 영전에서 용서를 비는 생전의 불효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나 소외된 노년을 당하면, 그 부모의 삶을 모방하는 자식들의 행동이 의지와 행실이 다른 형상이 <망령>이란 것을 알게 한다. 즉, 무기력한 노부모가 빨리 죽기를 바랐던 젊은이의 이기심이 이방인의 천벌로 되돌아 온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죽을 때 까지의 한으로 남아, 자작지얼의 슬픈 여생을 자초한 참회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이다.

   의지와 행실이 다른 사람을 실없(妄靈)다 한다. 즉, 인류해부학의 육감이 정상적으로 疏通하지 못한 현상을 漢醫書에서 疏外라고도 한다. 이 소외는 남녀 노소, 건강인, 병약인, 정상인, 장애인에게도 있다. 소외란, 구체적으로 대뇌와 육감의 신경계가 동귀일체 하지 못한 현상이며 이를 <망령>이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유독 노인의 망령만 <老妄>이란 불치병으로 터부시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어린 시절, 부친께서는 고조부 이전부터 漢醫書를 가정보감으로 통달해온 전통 때문인지 한문을 眞書라 하시며, 어린 나에게도 명심보감이나 소학 같은 한문책을 읽게 하셨다. 내가 한문책을 앵무새 처럼 따라 읽으면 문귀를 지적하시고 이야기를 해주시는 설명이 너무 재미가 있어, 일부러 한문책 읽는 시간을 자주 만들기도 했었다.

  이러다 보니 아버지를 혼자 만날 때가 되면 항상 읽던 한문책을 가지고 갔다. 새참을 갖고 간 수박 밭 원두막에서, 무 배추를 지키는 원두막에서, 새를 보는 원두막에서, 밤 수확을 할 때는 제각에서 한문책 이야기를 졸랐다. 그 때 마다 기특하게 여기시며 바쁜 일손을 멈추시는 아버지의 다정한 미소를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책읽는 것도, 이야기 해 주시는 것도, 모두 내가 원할 때 해 주셨고, 이야기 시작이나 끝내는 것도, 중간에 다른 이야기로 바뀌는 것도 내가 원하는 대로 해 주셨다.

 「구용아, 그 책에 孝道나 老妄 이라는 글이 많제?」
  하고 아버지가 대뜸 나에게 물으시기에, 나는 孝道와 老妄이라는 한자가 떠오르지 않아 책장을 뒤적이며, 자신 없이 작은 소리로 대답한다.
 「예…….」
 「그 孝道가 老妄하고 같은 기다.」하시며 나를 쳐다 보신다.
  나는 글자를 찾지 못했으나, 많이 들어본 말이므로 왜 같은지 물었다.
 「왜 같은 가요―?」
 「나 중 알게 될끼다만……, 내, 니한테 <노망>이야기 해 줄까? <노망>도 여러 가진 데……, 내 말 듣고, 하나 골라보래!」
  하시고 시간이 아까우신 듯, 약간 빠른 말씀으로 <老妄>의 종류를 말씀하신다.
 「<대원군 노망>, <황희 정승 노망>, <암행어사 노망>, <백결 선생 노망>, <이백 시인 노망>……」
 「 아버지, 다 해 주이소.」하며 나는 아버지의 말씀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의 급한 성정을 잘 아신 듯, 웃으시며 즉시 원하는 대로 화답 하신다.
 「오냐, 어차피 오늘은 한 가지도 다 못하니까.」
  하시며 하얀 재가 가득한 짧은 곰방대를 털어 허리춤에 꽂으신 후, 혼자 말처럼 '구용이 한테 어찌 이야기 해야 좋을꼬?' 하시며 작심하신듯 말씀을 계속하신다.
 「구용아, 귀담아 듣거라. <노망>은 늙은 부모가 죽을 때까지 자식을 도와주기 위해 노력하고 사랑하는 행실이다. 그 반대로 <효도>는 젊은 자식이 늙은 부모의 불편과 어려움을 도와드리고, 부모의 말을 믿어주는 행실이니라. 그래서 <효도>와 <노망>이 같은 것이란다.」
 「아버지는 전에, 외할머니가 똥을 벽에 바르고 이불 속에 감추고, 우리도 알아보지 못하시는 것이 <노망>이라 하셨는데요.」
 「그래 맞다.」
 「그런데 어찌 자식을 도와 주는 것이 됩니까?」
 「그래서 내가 지금 니한테 <노망>이야기를 해 주는거 아이가!」
  하시며 허리를 펴고 허리춤에 찾던 곰방대를 다시 뽑아 제각 주춧돌에 몇 번 가볍게 치신후, 담배 쌈지에 곰방대를 넣은채 두 손으로 꼼지락 꼼지락 엽초를 재시며, '무슨 말인지 잘 모리 것재?' 하는 눈으로 말씀을 하신다.
「구용이 니도 무슨 일이 니 생각대로 잘 안될 때가 많제? 꿈에 호랑이를 만나 빨리 도망 가고 싶은데 굼벵이처럼 느리고, 아버지 새참을 갖다 주기로 약속 해 놓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잊어 버리고, 미루다 숙제를 못해서 선생님에게 회초리를 맞는 것처럼 말이다.」
 「예, 많이 있어요. 시험 칠 때도 그렇고…….」
 「그 봐라! 외할머니도 우리를 도와 주시려고 애를 쓰신 것이 의지대로 안 된 것이니라. 그러니 자식이 효도를 항상 베풀면 <노망>이 날 여지가 없어지는 게지.」

   부모님은 동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외할머니를 모셨다. 할머니가 저질러 놓은 <노망>을 보시고면, 항상 웃으시고 짜증을 내거나 귀찮은 내색을 조금도 보이지 않으셨다. 할머니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시면, 일찍 돌아와 어머니를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사죄를 하시는 모습이 생생하다. 그럴 때마다 외할머니는 시꺼먼 똥을 손에 쥔 채 '잘 해야 했는데…' 혼잣말 같은 푸념을 하신 외할머니 모습을 기억한다.

  나는 아버지와 재미있는 이야기로 시간을 보낼 때가 제일 좋았다. 어머니나 누나, 형님과 이야기를 할 때 중간에 물으면, 가만히 듣고있어라 윽박질렀지, 아버지 처럼 내 말에 귀를 기우려 주지 않았다. 자연히 누님들과 형님, 어머님과 함께 있는 시간은 참 불편하여 스스로 미운 오래새끼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내가 방과후 집에서 감시감독을 피하여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특혜는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멍청하게 생각에 잠긴 나를 보시고 물으신다.
 「이야기가 재미가 없지?」하시는 아버지의 표정이 이해하기 어렵게 여기신 것 같고, 나도 아버지의 설명을 잘 몰라 재미있는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아버지, 대원군 노망 이야기 해 주이소.」
 「그래, 그 이야기부터 해 주마.」
  하시며 자그마한 곰방대에 수북하게 꾹꾹잰 엽연초에 두 개비의 성냥을 그어붙여서 겨우 한모금의 연기를 빨아 하얀 수염사이로 파란 연기를 내 뿜으신다. 나의 코 끝을 간지럽게 스치는 담배연기 냄새가 싫지 않았다. 아버지는 어린 나에게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 계신 듯 한 표정으로
 「<대원군 노망>이야기를 들어려면 <노망>이 생긴 연유도 알아야 하는데, 니 한테 좀 어려울 것 같구나. 아무튼 노인의 <망령>만 <노망>이란 병으로 보면 될끼다. 그 이 외 사람의 <망령>은 병으로 여기지 않은 것은, 누구나 책임회피나, 약속을 어기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세상이라 병 인줄 모르는 것이란다. 그래서 성군이나 정직한 사람들은 병든 세상이라 말 하는 것이니라. 이 병든 세상에서도 제일 나쁜 <노망>이 <대원군 노망>이란다.」
  하시며 연기가 가물가물 꺼지려는 곰방대를 연달아 빨아 불을 살리시며 이야기를 계속하신다.
「대원군이 아들을 임금에 앉히려고, 마음과 다른 행실로 세상을 속인 것과, 자식이 임금이 된후에는 그 배경으로 제 마음에 뒤틀린 사람이나, 시기하고, 샘이 나는 사람만 골라 숙청하였으니 죄없는 사람이 얼마나 고충을 많이 당했겠느냐. 그래서 남을 괴롭히려고 작정한 나쁜 행실을 <대원군 노망>이라고 하지. 그러고부터 권세을 업고 남을 무고 하거나, 출세를 하기위해 매관 매직을 하는 고관 대작들이나 그 수하들을 싸잡아 <대원군 노망>이 든 사람으로 부르게 된거란다. 그런 시절에 어떤 대감집 몸종 한 사람이 대감이 타는 말과 대감이 아끼는 개를 대감보다 더 공경하는 행실을 보고, 너는 왜 그토록 말과 개를 사람보다 더 공경하느냐고 물었더니, 우리 대감이나 수하들이 이 말이나 개 보다 못해서 짐승의 본을 봐야 된다는 뜻이라고 말을 했단다. 그 후부터 이 몸종을 <백결 선생, 이태백 노망>이 든 종놈이라는 말이 생겼단다.」
  나는 이야기가 지루하여 재미난 이야기가 없는지 다급하게 물었다.
「아버지, <황희정승 노망>은 요?」
「음, 지금 <황희정승 노망>이야기를 할낀데…,」하시며 이야기 줄거리를 말씀하기 시작 하신다.
「고려 망년에 우리 합천이씨 시조가 경주이씨로부터 가문을 독립하여 세울 무렵이니라. 경주성 밖의 작은 산골 마을에 가난하고 정직한 두 농부 내외가 아래 웃 마을에 살았는데, 이 두 집에서 늦둥이 아들을 같은 날 낳았단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착하게 자라면서 그 심성이 어찌도 그 부모를 닮아 이웃 어른들에게 까지 효제온공의 행실을 지킨다는 칭송이 왕궁에까지 전하여 졌단다. 
  왕은 암행을 하여 두 가정을 살펴 보신 후, 생계가 어려운 이 아이들을 불러 관비 유생으로 성균관에서 학업을 닦도록 하였느니라. 왕은 그동안 학업성취를 알아보기 위해 별시로 대과를 치르게 했는데, 두 사람이 동점으로 장원 급제를 하여 임금이 큰 보람을 얻어 기뻐하시며, '쌍둥이 어사'라는 별칭을 주어 고향의 부모님에게 인사를 하고, 부모님의 말씀을 글로 상소하라고 어명을 내리셨단다. 이들은 부푼 가슴을 안고 반갑게 맞아주실 부모님을 생각하며 고향으로 돌아 와 보니, 윗 동네에 사시던 부모님은 가재를 정리하여 고향을 떠나 버리셨고, 아래 동네의 부모는 모두 눈과 귀가 멀어계셨단다.
  이렇게 불행한 모습을 본 자식은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데, 윗 동네의 부모가 없어진 어사가의 그의 등을 두드리며, 채 마르지도 않은 편지 한 장을 보여주며 위로를 하였는데, 그 글 내용이 이렇게 쓰여 있었단다.
   '국록으로 공부하여 벼슬을 얻었으니, 백성을 위해 충성을 바쳐라'고 쓴 뒤에 급하게 쓴 글씨로 '우리를 찾아와 여생을 방해 하지 않는 것이 효도니라'고 써 있었단다. 그리고, 고향을 떠날 수 없어 눈귀를 버리고 자식의 벼슬로부터 자유를 얻은 것이니, 돌아가 국정에 전념하라고 쓰여 있었단다.
   왕궁으로 돌아온 쌍둥이 어사는 부모님의 편지를 임금님 앞에 내 놓으며, 부모님을 인사불성으로 만들어 버린 이 벼슬이 불효의 대죄가 되었다고 임금님에게 따졌더니, 침동한 어조로, 임금님은 어진 부모님들께서 <황희정승의 노망>으로 쌍둥이 어사들 보다 짐을 더 훈계 하신 것이라 대답하셨단다. 그래서 이 후부터<황희정승의 노망>이라는 말이 생겼단다. 이야기 재미가 있느냐?」
  하고 아버지는 나를 바라보시며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 보라는 표정이시다.
 「아버지, 나중에 그 부모님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뒤에 임금님이 두 부모를 도와주시려고 암행어사를 보냈는데, 사람들이 하는 말로 네 분 다 신선이 되어, 뒷산 선선바위에 가끔 왔다 사라진다는 이야기만 들었단다.」
 「벼슬한 아들하고 잘 살아야 좋을 낀데…….」하는 나를 보시고 
 「그리되면 <대원군 노망>이 들어 사람 살기 어려운 병든 세상이 된단다!」
 「아버지, 그러면 요새요, 공등고시에 합격해서 높은 공무원이 된 부모들은 모두 신선이 돼야 우리가 병들지 않겠지요?」
 「응? 허허…….」<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