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청기(難聽記)
내가 70대 초반의 일이다. 전화가 왔다. 수화기를 들고 전화를 받는데 말소리가 우렁우렁 울리고 무슨 뜻인지 분명하지가 않다. 상대편 전화기에 이상이 있는게 아닌가 싶어 내말이 들리느냐고 물으니 잘 들린다고 한다. 나는 우리집 잔화기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판단하고, 밖으로 나가 공중전화기를 이용, 상대방에게 전화를 걸었다. 역시 마찬가지 상태였다. 무신코 수화기를 왼쪽 귀에서 오른쪽 귀로 바꾸어 대어 보았더니 이 어찌된 일인가? 마소리가 또렷 또렷 잘 들리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하여 전화기 이상이 나닌, 내 귀에 이상이 생겼음을 비로소 발견하게 되었다.
그 길로 바로 K이비인후과의원으로 달려가 증상을 이야기하였다. 진찰과 청력검사를 한 후 운장이 진단을 내렸는데 '돌발성 난청'으로 왼쪽 귀의 청력이 30% 상실되었다고 한다. 마침 우너장은 B고교 때의 나의 제자뻘이 되는지라, 걱정 섞인 말로 "선생님, 언제부터 그렇습니까?"하고 묻는데 나는 알 수 없어 대답을 못하였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1개월 내외에서 생긴 돌발성난청이면 지금이라도 고단위 포도당주사 등을 맞고 치료하면 회복이 될 수 있는데, 오래 경과된 경우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튼, 일단 대학병원으로 가 보라는 권유에 따라, 즉시 D대학병원으로 가 보았다. 거기서는 K의원에서보다 더 정밀한 청력검사를 하는데 진단 결과는 역시 '돌발성 난청'이었다. 나에게는 충격적인 진단이었다. 청력이 30%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니 억울하고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회생을 시켜 달라고 매달리고 싶었다. 마침 당시 내 아들이 이 병원에 레지던트로 근무 중이었기에 저도 담당과장에게 최선의 치료 방법을 강구해 줄 것을 당부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일단 입원을 해 보라고 하여 그렇게 했는데 밤늦게야 담당의사가 찾아왔다. 검사 결과를 토대로 중의를 모아 치료방법을 논의해 보았는데 돌발난청이 발생된 지가 오래된 것으로 판단되고, 고단위 주사 등으로 치려를 하는 것도 오히려 부작용이 생겨 역효과가 나는 수도 있으므로, 안 하는 것이 좋겠다는 쪽으로 결론이 모아졌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앞으로 이 이상 더 악화되지 않도록 하는 수밖에 없으니 그렇게 하자는 것이었다. 부득이 단념을 하고 퇴원하였다.
'돌발 난청'이 생기는 원인을 물어 보았더니, 노령화와도 관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기력을 생각지 않고, 무리하게 밤샘을 하는등, 정신력을 과도하게 소모할 경우, 기력이 달라어서 돌발적으로 난청 증상이 생기는 수가 있다고 한다. 나 스스로를 되돌아보니, 지난날 간혹 원고 제출 기일에 쫓기어 작품 마무리를 한다고 펜을 끼적거리다가 본의 아니게 새벽3~4시를 넘긴 때가 더러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니, 나의 '돌발난청'은 자업자득의 소치였다. 반성과 더불어 후회도 된다. 고희를 넘긴 처지에 무슨 청년이라고, 자신의 체력을 돌보지 않고, 몸을 학대하였으니 그 죄값으로 '돌발난청'이란 형벌을 받은 것이다. 지난날 40대 후반 장학사로 근무할 때, 업무 폭주로 하루 이틀 밤샘쯤은 예사로 한 경험이 있었기에 70대에도 그것이 통할 것으로 착각을 한 것이 경정적인 나의 잘못이라 하겠다. 이제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지금 돌이켜보면, 양쪽 귀가 다 그렇게 되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오른쪽 귀는 지금도 95% 이상 살아 있기에 생활에 큰 불편은 없다. 다만 왼쪽 귀 성능이 불완전 함에 따라, 왼쪽편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불편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서너사람이 같이 걸어갈 적에는 상대의 말을 잘 알아듣기 위해서 반드시 가장 왼쪽에 서서 걸어가며, 모임 자리에서도 역시 왼쪽 좌석에 자리 잡는 습관이 되었다.
난청! 이는 노인성 질환의 하나이다. 우리 노인네들의 모임에 나가보면, 나청 환자의 대열에 들어선 동료가 적지 않음을 본다. 증세가 좀 심한 친구는 "요새 세상 돌아가는 것이 하 수상하여 듣고 싶지 않은 일들이 많은데, 난청에 걸리고 보니 오히려 편해서 좋다"는 이유 있는 농담도 흘린다. 물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말이지만, 최근 세상만사에 너무도 비상식적인 돌출사가 벌어지고 있어 공감을 느끼기도 한다. 간혹 좌석에서 대화중에 나청으로 인해 상대가 할 말을 다시 되묻는 일이 생길 때에는 나의 건강관리 소흘에 대한 자아반성이 되고 미안한 감도 든다. 아울러 후배들에게는 나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충고도 하고 싶어진다.
사람이 오래 살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상정이라할 것이다. 그러나 평균수명이 80세에 육박하게 되었음에도, 이 이상 더 긴 수명을 바라는 것은 어쩌면 '탐용'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신진대사는 자연의 섭리가 아닌가. 이제는 오래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편하게 갈 수 있도록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공통과제요, 또한 소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실해 진다.
나의 난청 증세는 벌써 5년이 지났다. 의사로부터 받은 과제, 즉 '더이상 악화가 도지 않도록' 하기위해 나청과의 전쟁을 하고 있다. 다행히 잣, 호두, 땅콩, 호박, 해바라기 등 비타민 E가 포함된 씨앗을 도둑맞은 후에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 지속해 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