培山書堂記                 癸亥


朝鮮爲檀君箕子浚人士莘莘諷孔經被儒服奉孔子爲國敎久矣莊子謂孔子之道配天地本神明育萬物六通四闢本末精粗其運無乎不在故孔子爲創敎之聖卽其運世之粗迹在春秋則有太平升平平據亂三世之異在禮運則有小康大同之殊其傳於七十子後學者則有今文之六經而六緯副之皆以除民之患奧深功明矣惟自漢劉歆僞作古文諸經纂亂聖統晉唐傳之雖以朱子才賢不能無蔽焉故朱子信僞周禮爲眞周公作贊其盛水不漏疑禮運大同爲老子之學說謂春秋不可解不知穀公董何之口說于是太平大同之義斷絶閉塞矣徒存據亂之說則不能範圍歐美民主社會之義遂至孔敎爲新學所疑攻豈不耗哉夫朱子一瑞偏安割據而巳朝鮮所傳爲孔敎者實劉歆僞纂之經朱子割據之敎非孔子本敎之眞也培山書堂會諸君悼大之危微憫人心之離變旣尊聖衛敎冒險犯難守死善道矣又能反本復始辨僞求眞疏附御侮命李君炳憲渡海問學訪求眞經以宏大道孔敎遂東其在培山書堂也夫是堂也故李氏地李退溪先生曺南冥先生訪淸香堂李公于此而李松堂李竹閣從學焉故丹城晉州數郡人士爲斯堂將以祀四賢李君忠鎬退溪先生之裔也以爲私其家賢不如公爲尊聖但保舊學不若講求眞經故就書堂立文廟而祀之來闕里求聖像而奉歸問廟樂而學焉將刻今文諸經說講習而布傳之孔敎之復元聖道之光大東國人心風俗之美其在斯夫諸君子遣李君炳憲求爲文累年矣(孔子二千四百七十四年七月五日 康有爲 記 之)


      배산서당 기문

 

조선이 단군과 기자의 후가 되어 인사가 많이 나서 공자의 경문을 외우고 선비의 옷을 입고 공자를 받들어 국교를 삼은지가 오래 되었다. 장자가 말하되 공자의 도는 천지를 짝하고 신명을 근본하고 만물을 생육하여 육합을 통하고 사방을 열어서 본과 말이 정미하고 굵은 것이 그 힘이 있지 않는 데가 없는 고로 공자가 창교의 성인이 되어 그 세상을 운전하는 굵은 자취가 춘추에 있어서는 太平과 升平과 據亂인 삼세의 차이가 있고 예운에 있어서는 小康과 大同의 다른 것이 있고 칠십 제자 후학에게 전하신 것은 今文 육경이 있어 六緯로 다음해서 모두 백성의 폐단을 제거하니 깊고 밝은지라 한나라 劉歆이 고문의 제경을 위조함으로부터 성통을 어지럽게 하여 진나라와 당나라가 천하니 비록 주자의 재현으로도 능히 그 진의를 가리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주자가 가짜 周禮를 참으로 周公이 저작했다고 믿어 그 말이 물을 담아도 새지 아니 한다하고 禮運의 大同이 老子의 학설로 의심하고 春秋를 해석하지 못한다하고 穀公과 董何의 말인줄을 알지 못하니 이에 태평과 대동 주의가 끊어지고 막혔으니 한갓 據亂의 말만 의존하여 능히 歐美의 民主社會의 주의를 본받지 못하여 드디어 공자의 유교가 신식학문의 의심하고 공격하는 대상이 되니 어찌 모순됨이 아니리요. 대개 주자는 육경을 얻지 못하고 다만 사서만 발명하였다. 그러나 발명한 것은 오히려 거란의 말이라 겨우 공자의 밀단만 밝혀서 한 모퉁이만 웅거할 뿐이라. 조선에 전래한 유교는 실로 유흠의 가짜로 꾸민 경서요 주자의 활거한 교는 공자 본교의 진짜가 아니라 배산서당 유회 제군이 大道의 위태하고 쇠미함을 슬퍼하고 人心이 떠나고 변함을 민망히 여겨 이미 성인을 높이고 유교를 모시고 험함을 무릅쓰고 어려움을 범하여 착한 도를 지켜 죽게 하고 또 근본에 돌아오고 처음대로 회복하며 가짜를 분변하고 진짜를 구하여 어모를 소부 하여 이군 병헌을 명령하여 바다를 건너 학문을 물어 진짜 경서를 구하여서 대도를 키워서 공교가 동방으로 건너오니 그것이 배산서당에 있도다. 이 서당은 이씨의 땅이니 이퇴계 선생과 조남명 선생이 청향당 이공을 여기에 찾아오고 이 송당과 이 죽각이 쫓아서 배운고로 단성과 진주의 두 고을 인사들이 이 서당을 위하여 四賢을 향사할 새 이군 충호는 퇴계선생의 후손이라 써 하되 자기집의 현인을 사정두는 것이 공적으로 성인을 위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다만 구학만 보존 하는 것이 眞經을 강구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고로 서당에 나아가서 문묘를 세워서 향사할 새 궐리에 와서 공자 화상을 구하여 받들고 사당의 음악을 물어서 배우고 장차 今文 제경의 말을 판각하여 강습하고 전포하려 하니 공교의 복원함과 성도의 광대함과 인심과 풍속을 아름답게 함이 이에 있고 이에 있음인 저. 여러 군자가 이군 병헌을 보내서 글을 구한지가 여러 해가 되었도다.


           공자 기원 이천사백칠십사년 칠월 오일  姜 有 爲 는 기록함


    再


聖廟祝文依禮樂誌中祝辭節削啇之

道東祠祝文依經紀撰定爛議入用爲盼耳

                       衍聖公府秘書廳啓


道東祠祝文見  衍聖公府秘書廳會議錄(以上當在癸亥三月二十五日下)

    刻下鄙人說法進行模

    聖像事幸達目的可賀所照

    大成殿之像至快亦須明日方能洗出乞

    再留一日爲盼書信明日倂送去此請

    晩安            孔令健啓 (三月二十五日)


       照像舘方在洗片中

       今日本擬鬯談並餞

       行李奈友人蝟集不暇抵掌良歉明晨

       台駕東行恐難面別後此藉鴈帛道相思可也

       玆送去

       聖像倂復函祈

       檢收爲盼沥此卽頌   有道

                            

                                   孔令健拜啓


   재(再)


성모 축문은 예악지 가운데 축사를 의방하여 전삭하기를 상의하고 도동사 축문은 경기 찬정에 의방하여 공의하여 쓰기를 바라노라.

                                  연성공부 비서청 계문

도동사 축문은 연성공부 비서청 회의록에 나타났다(이상은 계해 삼월 이십오일 아래 써야 한다)


 각하 비인 설법 진행하는 공자 화상을 모하는 일은 다행히 목적을 달성 하였으니 축하할 지라 대성전의 화상을 백히는 것이 지극히 빠르나 또한 내일이라야 씨처내니 빌건대 일일만 더 유숙하기를 바라고 서신은 내일에 같이 보내리다. 밤에 안녕하기를 청하나이다.

                      공연건은 계문함(삼월 이십오일)


   조상관이 방금 사진판을 씻는 중에 있음

금일에 본대 담화하고 아울러 행장을 전송하려 하였더니 손님이 많이 모아서 저장하기를 여가치 못하오니 진실로 불쾌합니다. 내일 새벽에 태가가 동국으로 발행할 적에 의심컨대 면별하기가 어려우니 이후는 편지를 통하여 서로 생각는 마음을 말하는 것이 가합니다. 이에 화상과 및 답장을 보내오니 빌건대 검수 하옵소서 곧 유도를 송축합니다.


                  공령건은 배계합니다.